정말 나와 오랑이는 모범생처럼 살아왔다.
크게 엇나간 적도 없었고 공부도 줄곧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일탈이라곤 고등학생 때 부모님 몰래 노래방을 갔던 거 정도였으니깐...
성인이 돼서도 술을 마시는 거 외에는 큰 일탈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물론 술도 찾아먹진 않고 마셔야 될 일이 있을 때만 마셨다.
그렇게 33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오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오랑이를 만나는 순간 문뜩
얘랑 결혼할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다른 기록에서 남겨보겠다)
그렇게 보통 사람들의 20대의 첫 연애처럼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했다.
그러던 중, 오랑이가 90일쯤 되었을까.
오랑이의 몸에 이상 현상이 포착되었다.
- 음식 냄새에 매우 매우 민감해졌다. 같이 먹던 보통의 고기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 잠만보가 되었다. 원래는 성격도 급하고 시간도 아까워하는 오랑이가 어느 순간 자꾸 졸리다고 쿨쿨 자기 시작했다.
-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 관리도 잘해와서 생리주기도 늘 잘 맞았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배가 조금 나왔다. (
하지만 이 배는 아가라고 하기에는 아직 너무 빨라, 원래 오랑이의 배일 수 있다)
그래도 예정일 보다 2-3일 정도는 밀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도 소식은 없었다. 나도 살짝 불안했고 오랑이도 느낌이 왔는지, 금요일 퇴근길에 임테기를 사서 퇴근했다.
아침에 테스트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기 전에 바로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이미 나는 남자의 직감(?)과 오랑이의 상태변화를 보고는 이상하게 임신인 거 같다고 무의식 중에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 내년에 결혼하기로 했었고, 내년에 아이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정이 아니긴 했다.
오랑이는 불안한 마음에 엉엉 울었고 나는 검사를 안 했지만 그 울음이 어느 정도 오랑이도 예상하는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오랑이는 아기가 싫다기 보다도 계획하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울었다고 했다.
울음을 그치고 진정이 된 이후 임테기로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
아침에 할 필요조차 없었다.
조금 애매해서 다시 해볼 필요도 없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명한 두줄이었다.
내가 먼저 확인했는데 나도 보는 순간 너무 얼떨떨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펑펑 울었던 오랑이는 오히려 임신이라고 결과가 나오니깐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는 약간 흥분된 상태로 미래를 이야기하며 밤을 이야기로 지새웠다.
지운다는 생각은 우리 둘 다 전혀 없었다. 펑펑 울었던 오랑이도 마찬가지였다.
- 아들일까, 딸일까?
- 이름은 뭘로 짓지? 아들이면? 딸이면?
- 아들이면 좋겠어, 딸이면 좋겠어?
-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하지?
- 부모님께 인사는 언제 드리지?
- 결혼식은 원래 안 하려고 했으니깐 괜찮은데 사진은 찍자
- 근데 몇 주차일까?
- 임신하면 어떤 혜택들이 있지? 뭘 챙겨야 하지?
- 태명은?
- 혹시 최근에 꿈꾼 적 있어?
- 자기 집에서 생겼을까, 내 집에서 생겼을까?
- 주변엔 어떻게 알리지...
-...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에 잠들었는데, 언제 잠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다음 주에 100일이라 같이 연차를 쓰고 쉬기로 했었는데 그날 산부인과를 가서 임신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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